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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옹이 이야기/개발자의 방향

지식의 여신은 쉽게 옷을 벗지 않는다

by 건우아빠유리남편 200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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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여신은 쉽게 옷을 벗지 않는다

나자신도 크게 다를바 없었겠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고르면서 보수나 복지, 근무시간을 먼저 따지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느 인사 담당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패기만만해야 할 젊은이들이 맨 처음 챙기는 것이 고작 퇴직규정이라고 개탄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을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옇든 젊은이들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이 땅에서 나처럼 평범한 엔지니어가 되면 일단은 그저그런 봉급에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반납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될 확률이 많을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야 요즘 시대상황이 급변하는 만큼, 변수가 많아 논외로 치더라도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하거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내며 코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에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 겠지만, 이런저런 애환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일을 통해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그 생활은 그저 고달픈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엔지니어 생활의 가치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를 들자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대단한 일은 못될 지라도, 일단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름대로의 창조적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새로 맡은 개발 업무를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 본인이 잘 인용하는 지식에 대한 몇가지 법칙이 있다. 그 첫번째는 바로 '지식의 여신(또는 남신)은 쉽게 옷을 벗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지식의 여신은 새침떼기에 콧대가 높아서, 절대 함부로 그 신비한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각자의 위치와 내공에 따라 업무를 할당받게 될 것이다. 익숙한 업무를 반복하는 것이라면 이미 통성명에 술자리까지 해서 친숙해진 몇몇 여신들과 반갑게 하이 파이브나 하면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겠지만, 대신 재미가 좀 덜하고 자칫 지루해지기 쉽상이다. 좀더 재미있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대로 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그 동기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공 증진을 통한 몸 값 키우기 같은 것처럼 좀더 세속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름대로 대단한 결심을 한 직 후, 우리는 자신의 앞에 낯설은 문이 하나 가로놓여 있음을 깨닳게 된다. 또한 그 문을 여는 순간 신비스러운 자태의 지식의 여신이 범접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신의 허락이 없이는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적절한 내공을 갖추지 못한 채 아부나 인맥으로 정치공작을 해댄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야속하리 만치 냉정한 새침떼기 여신의 괄시와 배척뿐이다.

길은 오로지 정성을 다해 공을 들이는 것 뿐이다. 그동안 한 두 번 재수로 일이 쉽게 풀렸다고 할 지라도, 아니면 타고난 천재라서 여지껏 문제없이 일을 해결해 왔을지라도 언젠가는 각자 레벨에 맞는 호적수를 만나게 된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여신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우리들은 오늘도 디버거에 올린 코드를 수십, 수백번 재 실행시키거나 이미 누더기가 된 칩 사양서를 읽고 또 읽으며, 다운된 보드를 하루에도 수백번 재부팅시켜야만 한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나가는 엔지니어가 되기위해서, 또는 상급자가 무서워서, 아니면 회사의 중요한 전략적 과제에 대한 책임때문에 포기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단순히 난관을 극복하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통속적인 설명을 떠나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될 한가지 더 큰 이유가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여신은 처음 생각했던것 보다 더 큰 보상을 돌려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식에 관한 두번째 법칙으로, 지식의 여신은 쉽게 지식을 허락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번 자신을 극복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너스까지 덧붙여서 마구 퍼준다는 것이다. 한번 여신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순간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자신을 괴롭히던 많은 문제들이 한순간 제자리를 잡으며 머릿속에 정돈될 때 느끼는 환희는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지만, 더불어 이제 지식의 여신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차례 차례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여신의 안내에 따라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것까지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하긴 요즘 쇼핑은 제품보다 경품이라는데 아까워서라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번 지식의 여신의 선물을 받아보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성공 체험이되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게된다. 그것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 일생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떤 식으로건 이러한 성공 체험을 할 수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쓸 만한 후배라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법칙만 남았다. 우리는 얼마간 그 여신의 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쾌적한 상태가 지속될수록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여신과의 작별인사도 이미 나누었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다. 잠시 여신과의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심코 코너를 돌아선 순간 우린 '악' 하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만다. 지식에 관한 세번째 법칙, '지식의 여신은 코너를 돌면 또 나온다'. 새로운 얼굴의 여신이 또 길을 막아선 것이다. 아마도 뉴톤은 이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진리의 바다에 이제 막 발목을 담구었을 뿐이라고 겸손을 보였던 모양이다.


[끝]

2001/06/15 나성언 (http://user.chollian.net/~lase)

비트 교육과정中... 마소에 실렸던 장선생님 선배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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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ehclu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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